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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런캘러(Helen Keller, 1880~1968)의 장애 극복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각과 청각의 장애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소외된 여성과 노동자를 위한 권리보호, 평화운동, 사회운동가로서 활약하였다. 헬런캘러는 또한 장애인들을 위한 권익 옹호자로서도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헬런켈러가 당시에 유행되었던 헤이젤던(Harry Haiselden)의 우생학 운동(Eugenic campaign)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게 된다. 내과 의사였던 해리 헤이젤던은“결함”이 있는 신생아들에게 1915년부터 공공연히 안락사를 시켰던 인물이다.
헬런캘러 스스로 이렇게 쓰고 있다.
행복의 가능성, 지능, 그리고 힘 등이 우리의 삶에 존엄성을 주지만 이것들이 없는 기형적이며 마비된 생각없는 생물…… 이러한 예외적 존재에 대한 관용은 정상적인 삶이 가진 존엄성을 줄이는 일이다.
정신결함……은 범죄자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우리는 헬런캘러가 한 시대의 진보되지 못한 보편적인 정신를 갖고 정신지체인의 존재가치를 부정했음을 알 수 있다.
특수교육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이타르(Jean-Marc-Gaspard Itard, 1775-1838)는 야생소년 빅터를 교육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빅터가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정신이 지체되었다고 가정하고 교육을 통하여 빅터의 야만적인 행동들이 개선될 것으로 믿었다. 이타르 교육의 노력으로 빅터는 몇 가지 단어들을 말하고 이해하였고, 반응과 사회성에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유명한 의사였던 이타르는 정상적인 상태의 회복을 기대했었으므로, 자신의 5년간에 걸친 교육의 노력을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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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르의 기대와 판단에 의한다면 오늘의 특수교사들이 하는 노력들은 결국 실패란 이야기인가?
특수교육을 유럽에서 도입하였던 미국의 초기 선구자들도 정신지체를“바보(Dumb, Feebleminded)”라 명칭하였고 심지어 학교의 이름까지도 바보학교라고 이름하였다. 가타드는(Henry H. Goddard) 뉴져지 빈렌드(Vineland, New Jersey)의 정신박약 훈련학교(Feebleminded and Backward Children) 책임자로 일했으나 또 다른“바보 (moron)”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의 1912년“캘리칵 가족 ((Kallikak): 정신박약의 유전 연구”)은 우생학 운동을 시작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다. 모든 특수교육의 선구자가 인간 생명의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특수교육의 초기(1930-1960)에 사용된 정신지체아동의 용어들을 살펴보면, 바보(dumb, idiot, feebleminded), 정신결함(mentally defective) 등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지능, 지각 장애(intellectual disabilities, cognitive disabilities)로 불리지만, 아직도 정신박약(mental retardation)은 미국의 특수교육법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과 사상들의 단면을 보게 된다. 물론 용어들의 본래 갖는 의미들이 시간이 지나며 부정적으로 변한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과거에 사용되었던 장애인에 대한 용어들은 부정적이고 개인과 가족들을 존중하지 못한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특수교육 역사에서 일어난 긍정적인 중요한 변화는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화되고 그리고 법과 제도 등이 개선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점진적이었고 선구자적인 철학이 항상 이러한 변화들을 이끌어 왔다.
헬리 나우웬은 노탤덤, 하버드 대학의 신학부에서 오래 동안 가르쳐왔다. 자신의 퇴임이 다가 올 나이쯤에, 그는 자신의 영적, 정신적인 소진을 느꼈고 치유를 찾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과 대화했다.
그의 글에 의하면,
소진이란 영적인 죽음과 같다. 나는“주여 저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명확히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나는 라아쉬(L’ Arche) 공동체를 창설한 Jean Vanier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하여서 하나님은“가난한 영혼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라, 그러면 그들이 너를 치유해 줄 것이다.”라는 부름을 듣게 되었다. 그 부름은 분명했고 뚜렷하였으므로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바드를 떠나서 라아쉬 공동체로 들어갔다. 가장 영리하고, 최고가 되기를 원하며,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언어조차도 없고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지 않는 변두리의 사람들에게로 가게 되었다.
그는 공동체에서 중증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그들과 생활을 함으로써 치유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중증장애자 친구 하나가 운명한 후, 불과 몇 달 후 그의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던 중, 그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가 라아쉬에서 장애인들과의 생활을 통해 쓰게 된 책들은 그가 하바드에서 발간한 어떤 출판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중증의 장애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적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는 모두 상호의존적이다. 가장 지능적인 사람 중 하나인 나우웬도 이들과 깊은 친구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치유를 얻게 되었다. 자녀들이 가장 어렸을 때 (가장 의존적일 때) 그들이 가장 사랑스러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일방적으로 받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자녀가 아주 어릴 지라도 우리는 상호의존적이다. 서로가 무엇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주는 기쁨은 부모가 제공하는 유형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무언가를 주었다면 우리는 이미 준 것 이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람이 순수하면 자꾸만 퍼 주고서도 빈 마음을 느끼지 않으며, 또한 무엇인가 우리 영혼을 채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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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고, 우리가 부족함을 느낄 때 우리는 가장 인간적이다. 물질과 재화의 가치로만 한 사람의 전부를 판단 할 수 없다. 개체는 독립되고 또한 상호의존적인 단계로 발전한다. 개인, 공동체, 그리고 사회속에 부족함이 있고, 관계 속에서 이 부족함들은 공유되거나 메워지며 공동체의 관계는 완성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특수교육에서 통합교육은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통합교육은 정상화가 그 배경이 되는데 이는 “장애인의 생활패턴과 매일의 생활조건을 사회의 보통적인 삶에 가장 가깝게 제공한다”는 지극히 간단한 생각에 기초한다. 정상화의 철학은 옳고, 그 방향이 바르다. 미국에서는 1950-1960대의 시민운동과 법적 장치로 말미암아, 장애아동들이 공교육에 포함되었으나, 이들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아 왔었다. 로이드 던(Lloyd Dunn), 립스키(Lipsky), 가트너( Gartner) 등의 교육가들에 의하면“특수교육은 문제 있는 학생들을 일반 교실로부터 분리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해롭고, 악하기까지 하며, 장애라는 라벨을 붙이고, 이들을 친구들로부터 분리하여 효과적이지 못한 교육을 제공하였다”고 분리교육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통합교육의 발달 단계는 나라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다. 1994년 유엔의 노력으로 살라만카 선언(Salamanca Statement)이 이루어졌는데, 92개 국가와 25개 국제기관들이 이를 인정하였다. 이 선언은“모든 아동들은 독특한 특성, 취향, 능력, 그리고 학습의 필요를 가지며, 아동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아동중 심의 교육원리로 교육하는 일반학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완전통합의 주장보다는 한 걸음 양보된 입장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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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생각의 바람직한 변화로 교육의 현상들이 발전되었고 또한 발전하고 있다. 개념화 되지 않으면 현실화 되지 못하듯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변화는 선구자적인 생각에서 시작되고 현실화되며, 그리고 큰 공동체적인 사고에 변화를 가져온다.
인간이 1마일을 4분 안에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었다. 400미터 트랙, 네 바퀴를 4분 안에 달리는 것은 죽음에 도전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영국의 로저 베니스터(Roger Banister)가 1954년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마의 4분 벽을 돌파했고 , 곧 이 사실이 전 세계로 알려졌다. 베니스터의 역사적 기록이 있은 지 불과 46일 만에 그의 기록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죤 랜디(John Landy)에 의해 경신되었고, 세계적으로 1년 후에는 37명이, 그 후 2년 만에 무려 300명이 4분의 벽을 깨는 일이 일어났다.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1969년 짐 하이네스(Jim Hines)가 100미터 단거리에서 9.95 기록했을 때, 10초의 벽을 돌파하는 일은 통념상 불가능하다고 믿어져 왔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8명의 결승주자 중에서 무려 6명의 주자들이 10초의 벽을 넘었다.
장애인에 대한 생각, 태도, 법 제도 등이 변화되었고 변화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은 이러한 변화들이 발전적으로 진보되어 왔었다는 점이다. 특수교육에서 어떤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나의 관점은 어떠한가? 보이는 것의 변화는 보이지 않은 것의 변화로부터 일어난다.
이젠 드시던 차를 마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