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여기 - 알렉스 한국 적응 도전기‘김치부터 친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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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특수교육
2023
제30권 2호
(vol. 128)
우리 지금 여기

알렉스 한국 적응 도전기 ‘김치부터 친구까지’

진은총(경기 한솔초등학교 교사)
이름: 알렉스(가명)
성별: 남 / 나이: 10세 / 국적: 카자흐스탄
성격: ‌호불호가 확실해서,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과 애정을 둠. 댄스를 즐김.

알렉스가 온다

“선생님 알렉스가 전학을 온대요.”, “알렉스가요? 언제요?”, “2학기부터요.”
여름 방학 중 별안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카자흐스탄 국적의 알렉스라는 10세 소년이고 본국에서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았기에 특수학급으로 오게 된다는 교육청의 연락이었다.
‘카자흐스탄?’ 언젠가 세계사 교과서에서 지나가며 봤던 기억이 난다. 일단 사용하는 언어부터 알아야 했다.
러시아어를 쓰는 국가다. 그때부터 조금씩 실감이 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하나하나 찾아가기 시작했다. 남은 방학을 기초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부모님께 보낼 한국 초등학교 그리고 특수학급에 대한 안내 사항을 번역해서 가정통신문을 만들었다. 이때 깨달은 것은 한국어 → 러시아어보다, 한국어 → 영어 → 러시아어로 이중 번역 절차를 거치는 것이 훨씬 의미 전달이 잘 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영어도 공부하고 러시아어도 공부하면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알가.” 알렉스를 집에서 부르는 애칭이었다. 개학 첫날 부모님이 오셔서 처음 알렉스를 소개한 말이다. 알렉스 부모님은 엄격한 동시에 사랑이 많은 분들이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번역된 가정통신문을 보여드렸고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다행히 알렉스는 우리 반 교실이 흥미로워 보였는지 첫날을 잘 보내고 하교했다.

순탄치 않았던 장애인 증명 절차

알렉스의 부모님이 카자흐스탄에서 발급받은 장애인 진단서와 각종 서류를 공증받아 학교와 교육청에 제출했다. 그래서 장애인 등록과 특수교육대상학생으로의 선정 및 특수학급 배치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장애 진단서 등 공증받은 문서 일체를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알렉스는 한국에서 장애 진단 및 진단 평가를 한번 더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서류를 준비하고 공식적인 입급 절차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국제 장애인 증명서, 국제 복지 카드 등의 국제적인 장애인 증명 서류가 있었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김치를 먹지 않는 알렉스의 편식

알렉스의 한국 생활은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다. 이제 한국이 알렉스의 생활 환경이자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알렉스는 고기반찬만 먹었다. 그래서 배변 활동을 힘들어한다는 부모님의 우려가 있을 정도로 편식이 심했다. 게다가 낯선 타국에 와서 그런지 편식이 더욱 심해졌다. 그중 급식에 매일 나오는 메뉴가 있다. “김치.” 알렉스는 급식을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김치를 절대 먹지 않았다. 마치 첫인상을 보고 호감가는 친구랑만 어울리던 알렉스의 교우 관계랑 비슷했다.
알렉스는 통합학급에서도, 특수학급에서도 한두 명의 친구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하나 나머지 다수의 친구에게는 경계심에 둘러싸여 늘 적대적인 태도로 임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서 늘 학급 친구들과 교사를 불안하게 했다. 김치도 알렉스에게는 그런 존재였다.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김치에 대한 불호의 느낌이 아주 강했다. 하지만 한국에 정착해야 하는 알렉스가 시도는 해보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여러 종류의 김치를 제시했다.

호적수였던 민철이와의 관계 회복

알렉스는 민철이와 매일 다퉜다. 민철이와 특수학급에서 하루 대부분을 함께하는 만큼 다툼은 특히나 자주 일어났다. 학습 영상을 같이 시청하다가 갑자기 알 수 없는 욕을 한다든가 공격 행동을 하는 것이다. 민철이도 발끈하여 서로 공격 행동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차이점은, 민철이는 김치를 아주 잘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민철이를 지도한 뒤,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이중 번역을 마친 뒤 더듬더듬 읽어가며 알렉스를 지도했다.
알렉스가 러시아어로 답을 할 때는 다시 발음을 추측해서 영어로 번역한 뒤, 한국어로 번역해서 알렉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래서 둘 사이를 중재하고 다루는 것은 4배, 5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었다. 부모님과 알렉스의 학교생활을 공유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중 번역 후 의미 전달에 오류가 없는지 여러 차례 확인 해야만 했다. 그런데 ‘미운 정’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서로 전혀 말도 통하지 않고 표정과 비언어적 대화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했던 알렉스와 민철이. 둘은 동요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웃음을 주고받는 날이 많아졌다.
알렉스는 그렇게 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웃음과 행복을 주는 선물 같은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또 알렉스는 한국어를 생각보다 금방 습득했다. 이름을 한글로 쓰기까지 한 달이 걸렸고 ‘고마워, 감사합니다. 주세요, 싫어요’와 같이 기본적인 의사 표현도 한 달 반 정도 지나니 할 수 있었다.
“김치 주,세,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알렉스가 김치를 먹어보겠다고 자진했다. 민철이가 김치를 먹는 것을 보더니 따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양한 교육적 자료를 통해 제안했을 때는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민철이와 친해지면서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경험을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알렉스에게 김치는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괜찮았던 것 같다. 배추김치에서 시작해서 깍두기, 열무김치까지 맛보고는 반찬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김치 먹기를 시작으로 교우관계도 확장

신기한 것은 거부하던 음식을 도전하고 맛보기 시작하며 알렉스의 교우관계도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통합학급에서 전혀 교류가 없던 친구와 비언어적 표현을 주고받기도 하고, 무조건 적대적으로 대하던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웃으며 알렉스의 통합학급 선생님과 김치 이야기, 민철이와의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자폐성장애학생들은 감각적으로 예민하여 편식과 음식에 대한 경험이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알렉스는 민철이와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김치를 맛보는 것에서도 도전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혔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알렉스에게 한 가지 배울 수 있었다. 나 역시 시도해보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것이다. 알렉스의 김치 먹기도전은 교우관계의 확장을 만들어냈다.
소년 알렉스의 도전은 그의 인생에서 또다른 형태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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