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수였던 민철이와의 관계 회복
알렉스는 민철이와 매일 다퉜다. 민철이와 특수학급에서 하루 대부분을 함께하는 만큼 다툼은 특히나 자주 일어났다. 학습 영상을 같이 시청하다가 갑자기 알 수 없는 욕을 한다든가 공격 행동을 하는 것이다. 민철이도 발끈하여 서로 공격 행동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차이점은, 민철이는 김치를 아주 잘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민철이를 지도한 뒤,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이중 번역을 마친 뒤 더듬더듬 읽어가며 알렉스를 지도했다.
알렉스가 러시아어로 답을 할 때는 다시 발음을 추측해서 영어로 번역한 뒤, 한국어로 번역해서 알렉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래서 둘 사이를 중재하고 다루는 것은 4배, 5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었다. 부모님과 알렉스의 학교생활을 공유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중 번역 후 의미 전달에 오류가 없는지 여러 차례 확인 해야만 했다. 그런데 ‘미운 정’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서로 전혀 말도 통하지 않고 표정과 비언어적 대화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했던 알렉스와 민철이. 둘은 동요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웃음을 주고받는 날이 많아졌다.
알렉스는 그렇게 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웃음과 행복을 주는 선물 같은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또 알렉스는 한국어를 생각보다 금방 습득했다. 이름을 한글로 쓰기까지 한 달이 걸렸고 ‘고마워, 감사합니다. 주세요, 싫어요’와 같이 기본적인 의사 표현도 한 달 반 정도 지나니 할 수 있었다.
“김치 주,세,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알렉스가 김치를 먹어보겠다고 자진했다. 민철이가 김치를 먹는 것을 보더니 따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양한 교육적 자료를 통해 제안했을 때는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민철이와 친해지면서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경험을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알렉스에게 김치는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괜찮았던 것 같다. 배추김치에서 시작해서 깍두기, 열무김치까지 맛보고는 반찬으로 받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