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 산 정상을 등반하는 학생과 교사들 : 체험교육을 실현하는 독일의 특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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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특수교육
2023
제30권 3호
(vol. 129)
월드리포트 1

산 정상을 등반하는 학생과 교사들 : 체험교육을 실현하는
독일의 특수학교

민세리(베를린훔볼트대학교 재활특수교육학과 박사과정 )
올해도 어김없이 산 정상을 등반한 독일의 어느 학교가 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을 등정한 특수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오토슈펙슐레(Prof.-Otto-Speck-Schule)이다. 뮌헨에 소재한 오토슈펙슐레는 정서행동장애(자폐성장애 포함) 공립특수학교이다. 2023년 기준 학생 수는 총 87명, 교직원 수는 총 28명으로, 한 학급에 최대 10명의 학생이 교육을 받고 있다.

오토슈펙슐레의 체험교육

오토슈펙슐레의 특징은 체험교육(Erlebnispädagogik)에 기반을 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현장체험 학습(예: 소풍, 견학, 관람, 수학여행) 외에도 하이킹, 숙박형 산악 투어 등 다채로운 체험교육활동이 학교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이중 단연 눈에 띄는 체험교육은 숙박형 산악 투어인데, 올해 7월 5학년~9학년 전학생과 교직원은 독일 최고봉인 추크슈피체(Zugspitze, 해발 2,962미터)를 등반하는 3박 4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7월 19일 바이에른주 공영방송(BR)은 오토슈펙슐레의 산악 투어 여정을 동행하며 촬영한 약 2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과연 오토슈펙슐레의 산악 투어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산악 투어의 교육적 효과는 어떠할까?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독일의 체험교육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 보겠다.

체험교육의 의미

오늘날 독일 학교의 상당수는 체험교육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독일어로 체험교육(Erlebnispädagogik)은 체험(Erlebnis)과 교육(Pädagogik)을 결합한 용어이다. 이때 체험은 일상적인 것이 아닌 특별한 것, 우리의 내면을 움직이는 것,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육은 교육학이라는 학문적 성격이 강한데, 참고로 체험교육은 독일 대학에서 전공과목으로 이수할 수 있다. 체험교육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한데, 독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체험교육은 행동지향적인 교육방식으로, 신체적·심리적·사회적 도전과제에 직면하는 활동적이고 구조화된 학습과정을 통해 학생의 인성발달과 삶에 대한 책임감을 도모하는 교육이다(Michl 2020)”.
독일의 교육학자 Michl(2020)은 ‘체험교육저울’ 모델을 제시한다. 아래의 그림에 묘사된 저울 왼쪽에는 교사가 제공하는 현상(Ereginisse), 예를 들어 어떠한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다. 학생이 현상을 겪고 그에 따른 인상이나 느낌을 받으면, 현상은 체험(Erlebisse)으로 승화한다. 이때 모든 현상은 개인이 가진 조건(예: 발달환경, 기분 상태, 사고방식, 연령)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해석된다. 즉, 모든 현상은 개인마다 다르게 체험된다. 이어서 교사는 체험을 통한 학습효과가 발생하도록 도모해야 한다. 저울 오른쪽이 묘사하듯 교사는 학생에게 자신의 체험을 표현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표현/성찰 과정 후 교사는 학생이 체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이를 일상생활에 어떻게 전이할지 또는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관 지을지 학생과 함께 점검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교사가 만약 현상만 제공한다면 당연히 저울은 왼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교사가 체험을 성찰하고 평가하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저울은 오른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체험교육은 이 저울이 균형상태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Michl의 ‘체험교육저울’모델

체험교육의 효과 및 한계

일회성 이벤트와는 달리 이토록 체계적으로 고안된 체험 교육의 교육적 효과는 학계와 현장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체험교육의 교육적 효과는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각각의 체험과 그 효과는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명의 학생이 똑같은 현상을 겪어도 각자 체험하는 정도와 효과는 모두 다르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 각자의 체험은 개인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해석된다.
물론 체험교육은 한계를 지닌다. 예를 들어 사회 불균형이 심한 지역이나 학교에서는 체험교육이 그저 증상만 치료할 수 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하거나 제거하는 데 이바지하지는 못한다. 또한 체험교육은 학생의 문제를 즉각 해결해 준다거나 지식교육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매우 특별한 체험교육: 오토슈펙슐레의 2023년 산악 투어

다시 오토슈펙슐레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다. 앞서 언급했듯 바이에른주 공영방송(BR)이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오토슈펙슐레의 2023년 산악 투어 여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박 4일의 일정 중 학생 26명과 교직원 15명은 첫째 날과 둘째 날에 등산하고, 셋째 날과 넷째 날에 하산한다. 해발 2천 미터 이상을 이틀간 등산하고 이틀간 하산하는 것이다. 첫째 날에는 15킬로미터 코스가 펼쳐졌다. 그런데 여정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학생이 중도 포기를 선언한다. 정상까지 갈 자신이 없고 모든 게 두렵다는 이유에서이다. 교사들은 학생이 산악 투어에 참여하도록 적극 설득하고 학생을 격려하는 등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설득에 실패하고 이 학생은 중도하차를 했다. 하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등반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6시간의 기나긴 여정 끝에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둘째 날의 여정은 더 험난했다. 첫째 날 코스는 비교적 평지였으나 둘째 날에는 비탈진 지형과 암벽 등반 코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한 학생이 체력 소진으로 다른 학생들과 거리가 많이 벌어지자, 평소 충동성과 공격성이 강한 학생이 그를 향해 버럭 화를 내며 “그럴 거면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교사는 소리친 학생을 엄하게 훈계하며 “만약 네가 저 상황이라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니?”라며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자세, 서로 격려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끊임없이 강조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은 드디어 산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까지 암벽 등반하기 힘든 학생들은 나머지 구역을 케이블카로 이동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혼자 힘으로 암벽 등반까지 하며 산 정상에 도달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독일 최고봉을 등반한 모든 학생은 형용할 수 없는 성취감과 뿌듯함에 환호성을 질렀다.
산악 투어 과정에서 학생들이 혼자 힘으로 정상을 등반하긴 했지만, 그 뒤에는 교사들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끊임없이 격려하고, 일부 구간에서는 학생들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기도 하고, 험난하고 비탈진 길에서는 손을 잡아주는 등 학생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나섰다. 반대로, 속도가 많이 뒤처지는 학생이 있을 때 교사는 오히려 한 발 물러서 학생이 기력을 회복하고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 주기도 했다.

오토슈펙슐레 산악 투어 모습

오토슈펙슐레의 체험교육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

오토슈펙슐레의 3박 4일 산악 투어는 특별함을 넘어 험난하고 혹독한 과정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타인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가는 법, 속도가 느린 동료를 침착하게 기다리는 법, 비탈진 길에서 동료의 손을 잡아주거나 뒤에서 지지하는 법,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학생들의 사회성과 독립심 그리고 협동심이 한층 발달했다. 나아가 학생들은 험난한 여정 속에서 동료 학생과 교사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보다 견고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오토슈펙슐레 교사들은 이러한 체험교육을 통해 정서행동 장애학생들의 공격성과 문제행동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학생들의 일상생활과 학교생활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며 체험교육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확신한다.
체험영역을 확장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로운 도전을 수용할 수 있다. 또한 난관을 극복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이미 시작한 길을 끝까지 걸어나갈 수 있다.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고, 타인과 협력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러한 능력은 오늘날 학생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지만, 지식교육이 강조되는 기존의 학교교육과정 속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충분히 전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토슈펙슐레는 체험교육을 강조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체험교육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료출처
  • Werner Michl (2020): Erlebnispädagogik. München: Ernst Reinhardt.
  • https://www.br.de/nachrichten/bayern/kampf-um-den-erfolg-eine-foerderschule-erklimmt-die-zugspitze,TkIaWCy
  • https://otto-speck-schule.edupage.org
  • 그림1: https://otto-speck-schule.edupage.org/news/
  • 그림2: https://unsplash.com/de/fotos/DqgMHzeio7g
  • 그림3: Werner Michl (2020): Erlebnispädagogik. München: Ernst Reinhardt.
  • 그림4: https://www.br.de/br-fernsehen/sendungen/kontrovers/kontrovers-story-schulausflug-extrem-19-juli-1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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