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등중학교 교사 한승진
국어교사에서 특수교사로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고 교사로 살아온 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가지 일을 10년 정도하면 그 일에 도사가 된다고 하는데 내겐 그게 아닌 것 같다. 10년이 아니라 20년을 교육에 몸담았는데 도사는커녕 그 언저리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더욱이 나는 특수교사이면서 특별한 교사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국어교과에서 특수교과로 전과(轉科)한 ‘전과자 교사’이다. 나는 전과자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 이유는 전과한 것에 대한 스스로의 즐거움과 다짐을 되새기려는 이유에서이다. 서울서 나고 자라고 공부하다가 어찌어찌하다보니 전혀 연고가 없는 농촌지역 사립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초창기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중요하다보니 이른바 잘 가르치는 국어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족집게교육을 위해 국어교과서와 교사용지도서를 끼고 살았다. 수업시간에는 열변을 토해가면서 가르치고, 피로에 지친 몸을 커피와 피로회복제를 먹어가면서 방과후학교 수업을 해댔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나름 알기 쉽게 가르치는 노하우를 터득하여 학생들의 성적이 잘 나오기도 하였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학교장의 칭찬도 듣기 좋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기쁘지 않았다. ‘내가 교사인가? 학원 강사인가?’하는 생각에 즐겁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학교가 즐겁지 않았다. 국어교사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커져갔다. 그러던 차에 업무중 하나로 해오던 특수교육이 자꾸만 떠올랐다. 낯선 분야이다 보니 불편하고 어색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소수의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을 위해 행정업무를 하고 특수교육지원센터 주관 행사에 인솔자로 참여하면서 조금씩 특수교육을 알게 되었다.
문득 특수교사가 되면 즐겁게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그게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현직교사로서 특수교육대학원을 졸업하면 특수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곧바로 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하였고, 학교장과 재단이사회에 특수학급을 만들면 좋은 점을 제시하여 교육청 승인을 받아 특수학급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국어교사에서 꿈에 그리던 특수교사로 전과할 수 있었다.
특수교육현실, 음매 기 죽어~
누가 시켜서도 아닌 자청해서 기를 쓰고 특수교사가 되고 보니 남다른 각오로 새출발을 다짐하였다. 이제 학교행정실에서 국어교사가 아닌 특수교사로 표시과목 변경이 되었다고 알려왔다. 드디어 간절히 바라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학교설립 5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을 해냈다. 그 누구도 학교에 특수학급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그 필요성도 생각지 않았는데 자청해서 특수학급을 만들어 특수학급 초대 교사로 등극한 것이다. 멋진 특수교사가 되고 싶어서 여러 가지를 알아보니 생각보다 특수교사의 길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특수교사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학교에서 특수교사는 자칫 섬과 같았다. 교무실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고 특수반에서 근무하고 장애학생들 위주로 가르치다보니 그렇다. 그러다보니 교사들과 소통과 교류도 쉽지 않고 비장애학생들과 사제동행도 쉽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학교에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특수교육, 통합교육에서 해법 찾기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면서 메모지에 이런 말을 적어보곤 하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길이 안 보이면 돌아가면 되지.’ 이런 생각들을 되뇌면서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해결점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먼저 특수학급비 확보를 위해 알아보니 교육청에서 공모하는 사업들이 여럿 있었다. 공모 신청서만 잘 하면 교육지원금이 나온다. 이렇게 해서 특수교육분야 공모사업과 내가 맡은 업무에서 공모사업비를 따오는 방법으로 교육비를 확충해나갔다. 상담, 다문화, 통일업무들을 맡다 보니 이쪽 분야에서 공모사업이 가능한 영역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 공모사업 계획서에 ‘특수학생과 어울림을 통한 모두가 행복한 세상만들기’라는 주제로 내가 맡은 사업들로 특수교육을 연계하니 특수업무와 일반업무가 따로국밥이 아니라 비빔밥이 되어 두 가지가 아닌 한 가지가 되어 좋았고, 업무간소화도 이루니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나는 특수교육을 학부에서 한 것이 아니기에 특수교육의 기초가 부족하다. 이것이 내게 큰 아쉬움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으로 인해 교육경력을 자랑하는 중견교사의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젊고 의욕적인 신참교사의 자세로 임하려고 노력한다. 특수교육에 대한 부족을 체감하기에 국립특수교육원 등에서 열리는 연수도 열심히 듣고 전공 서적도 부지런히 찾아보고 인근 특수교사들에게 귀동냥, 눈동냥해가면서 배우고 익히고 있다. 고맙게도 특수교사들은 일면식도 없는 이 햇병아리 특수교사를 아무런 편견이나 거리감 없이 있는 정보 다 내주고 모르는 정보를 알아봐주고 하면서 특수교육계에 진입한 햇병아리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이렇게 저렇게 내게 부족한 지식과 경험을 보완해가고 있으나 사실 내가 더욱 중점을 두는 것은 이러한 단점을 나만의 강점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나만의 강점, 그게 정답
나는 오랫동안 일반 국어교사로 살아왔다. 나름 국어교사로서 성공적인 경험도 있고, 국어교과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한데 어우러지는 교육을 펼쳐본 적도 있다. 특수교육이나 통합교육의 지식도 없이 멋모르고 해본 것들이라 서툴고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 있게 해본 것들도 있다.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문학은 대리경험의 세계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 감정이입이나 간접경험도 해보고 삶의 여유와 낭만적인 상상력으로 사람됨을 넓힐 수 있다. 문학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결말이다. 그래서 문학수업은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고 누구나 자기 경험과 생각과 느낌으로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장애학생도 문학수업에서는 기죽을 것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장애이해나 평등과 인권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도 많다. 이 중 내가 즐겨 거론하는 작가는 고(故) 장영희의 수필인데 그의 글은 지체장애인인 작가가 장애인이라는 편견 없이 세상을 예리하고 따듯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돋보이는 표현들이 많다. 최근에는 교과융복합수업의 예로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장영희의 수필 ‘괜찮아’를 읽으며 몸이 불편한 사람의 관점을 생각해 보고, 사회 시간에 ‘평등’이라는 개념을 배우며 장애학생들과의 관계를 다시 고민해 보았다. 이렇게 일반교과수업과 연계하면 장애인식개선에도 효과만점이다. 이런 수업은 장애학생들의 인권 인식을 높여주는 동시에, 비장애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때로는 이야기를 통해 장면을 상상하게 하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고 이야기로 풀어 보고, 실연(實演)하게 하기도 한다.
나는 어울림을 강조한다. 머리로만 아닌 몸으로 이해해야 진짜이다. 특수반 학생과 일반학급 학생이 한데 어울림의 방법은 함께 1박 2일로 생활체험하기, 함께 목욕하기, 함께하는 공동체놀이 등이 있다. 인권동아리나 책쓰기 동아리도 만들어 이들 동아리를 통해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도록 이끈다.
통합교육 쉽게 생각해 보면요~
나는 통합교육이 특수교사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합교육, 특수교사만의 전문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반교사도 자기 교과에서 얼마든지 통합교육을 할 수 있다. 요즘은 일반교사도 얼마든지 특수교육의 이해교육이 가능하고, 통합교육의 자료를 찾을 수 있다. 굳이 특수교육을 전공하지 않아도 정보의 홍수 시대에 자료 찾기는 무궁무진하다. 더욱이 우리학교처럼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는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어울림으로 교과융복합교육도 가능하다. 그러려면 특수교사가 특수반에서 나와 일반교사와 함께 어울려야 한다. 특수교사로서 특수반의 특수성을 주장하고 특수학생의 보호와 인권보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특수교사는 때로는 인권운동가가 되고 민주투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따뜻한 감성으로 일반교사와 동료애를 나누고 비장애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교사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장애학생들이 비장애학생들과 어울림이 가능해진다. 장애학생들이 특수학교가 아닌 통합학교 안에서 교육받으려는 것은 특수한 교육이 아니라 통합교육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능한대로 어울리고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하나 되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국어교사의 경험과 역량을 장애학생들에게 마음껏 전해주고, 비장애학생과 동떨어진 특수교사가 아니라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어울릴 줄 아는 특수교사가 되고 싶다.
모두가 행복한 수업
어쩌다 특수교사
모두가 즐거운 통합 동아리, 함께 가꾸어 봐요!
서로 다른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동행, 서로 알아가며 함께 나누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