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리(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재활특수교육학 박사과정)
독자 의견
저는 이번 3호(가을호)에서 월드리포트 '코로나19 시대, 독일에서 장애학생이 취업하는 법'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글을 쓰신 분이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하고 계셨는데 어떻게 유학을 진행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독일 월드리포터분의 인터뷰를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월드리포트에서는 현지에 거주하는 리포터를 통해 각 나라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리포터분에 대해 알고 싶다는 독자의견이 있어 이번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간 들을 수 없었던 독일의 유학 생활 이야기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독일의 특수교육 현장 소식을 민세리 리포터에게 들어봤다.
ⒸKaDe Hoffmann
드디어 인사를 드리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교대를 졸업하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는 민세리입니다. 독일인 남편과 여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베를린에 거주하는 평범한 아줌마이기도 하지요. 참고로 재활특수교육학(Rehabilitationspädagogik)이란 장애인의 재활 및 사회통합을 연구하는 비교직과정으로, 영유아기 조기발달지원부터 노년기 지원에 이르기까지 전생애적 관점에서 장애인에게 접근하고 장애인과 함께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재수 끝에 그토록 열망하던 교대에 입학하고 그토록 원하던 독립생활을 했건만, 새장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갈수록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냥 한번 훨훨 날아 다른 세상을 체험하고 싶은 막연한 꿈만 꾸던 중, 3학년 1학기에 수강한 특수교육 수업 첫날 교수님이 자신의 독일유학 생활을 잠시 소개하셨죠. 그 순간, 심장이 미친듯이 뛰더라고요. 게다가 (거의)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다니! 참고로 독일에는 학기당 6개월 치 교통비가 포함된 약 40만 원의 대학등록금이 들어요. 어려운 집안 형편상 자력으로 유학해낼 만한 곳이 바로 독일이며, 평소 관심 있던 특수교육을 공부해보자는 확신이 들자, 그때부터 단순 무식하게 돌진했어요. 그리고 교대 졸업과 동시에 전 재산 800만 원을 들고, 대학 입학허가서도 없이, 이 모험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인생의 거름이 될 거란 믿음을 갖고, 홀로 독일행 비행기에 탔지요.
독일에 도착하자 드디어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화, 새로운 교육을 경험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듯 흥분했죠. 그런데요, 약 13년의 유학생활을 되돌아보니 독일에는 사실 엄청나게 새롭거나 대단한 것은 없었어요. 가령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은 일하고 1년 중 법정휴가 30일(장애인 작업장 기준)을 보내면서 국내외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여가생활을 누리는 것이 독일에서는 ‘당연’한 삶이지요. 나치정권의 장애인 대학살 같은 부끄러운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대학수업 또한 그리 ‘특별’한 게 아니라 이 나라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교육이지요. 이러한 ‘당연함’을 당연하다고 깨닫는 과정이 제 유학 생활이 아니었나 싶어요.
답답한 새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저는 독일 유학을 통해 적어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라는 새장에서는 탈출한 것 같아요. 서양의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나’를 존중하고 ‘내 삶’의 주체는 ‘나’라는 인식이며 동시에 ‘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너의 삶’을 존중하는 인식에 더 가깝더라고요. 그러니 타인의 기준과 잣대에 좌우되지 않는 삶이 가능한 거죠. 비유해볼게요. 한국인과 독일인이 옷가게에서 외투를 한 벌 구매하려고 해요. 한국인은 “요즘 뭐가 제일 잘 나가요?”라고 가장 먼저 물어볼 것 같아요. 반면 독일인은 판매원에게 이렇게 말할 거예요. “모자가 달려있고 순면으로 된 검정 제품 있나요?” 바로 이 차이인 거죠.
제 유학생활은 마치 수많은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듯, 여러 사람의 지원과 응원 속에서 완성되어 갔어요. 전 재산 800만 원이 거의 사라질 즈음 제게 1년간 따뜻한 보금자리와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신 독일 할머니들. 빵집 판매원, 베이비시터, 식당 종업원, 호텔 청소부, 치매노인거주시설과 중증장애인요양시설 보조원 등 각종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을 때, 제게 보다 학업에 집중하라며 학사과정 3년간 생활비를 후원해주신 독일 부부. 결혼 후 석사와 박사과정을 전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남편과 시부모님 등등.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지요.
‘월드리포트’를 쓰고 각종 연구를 하는 저의 작업 공간이에요. ⒸJohann Hoffmann
독일 대학의 특수교사양성과정은 초등교육학과 중등교육학으로 구분되는데, 훔볼트 대학교의 초등교육학는 독어, 수학, 사회·과학, 특수교육, 스포츠, 신학 중 3개의 전공과목을 선택해야 해요. 이 중 특수교육을 선택하면 세부전공으로 시각, 지적발달, 청각 및 의사소통, 운동성 발달, 정서행동발달 중 2개의 중점분야를 정하고 졸업논문도 특수교육을 주제로 써야 하죠. 즉 특수교사가 별도로 양성되는 게 아니라, 3개의 전공분야 중 하나를 특수교육으로 전공한 초등교사가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는 형태지요. (특수)교사가 되려면 3년의 학사 과정과 2년의 석사 과정을 마친 후 18개월의 교사실습과정을 거쳐야 해요. 실습 기간 중 일반적인 교사업무도 담당하며 일반적으로 17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요. 교사실습과정 종료 후 졸업논문을 쓰고 구두시험을 치르면 국가인증 교사자격이 부여되지요. 한마디로 독일에서 (특수)교사가 되려면 최소 6년 반이라는 시간이 필요해요.
독일에서는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즉시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오히려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가 공기 중에 자연적으로 아물도록 기다리는 방식을 권해요. 장애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 또한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장애를 숨기는 데 급급하거나 장애인을 과도하게 보호하지 않고,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장애인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사회가 아닐까 싶네요. 독일인에게 한국의 특수학교 님비현상을 이야기하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도대체 왜 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요”라며 의아해하죠. 장애학생과 특수학교에 대한 기본적인 사회인식이 어떠한지 가늠이 되죠?
그렇다고 장애학생에 대한 차별이나 소외가 없지는 않죠. 예를 들어 현재 독일의 특수교육대상자 중 약 30%만이 완전통합교육을 받고 있어요. 물론 완전통합이 가능한 경증장애학생이 일반학교에서 교육받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다만, 이를 위한 재정적, 인적 지원이 충분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기에 장애학생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요.
사실 특수교육적 목표나 가치는 한국이나 독일이나 동일해요. 그렇다면 양국 간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할까요? 저는 그것이 특수교육의 출발점에 있다고 봐요. 약 2년 전 한국의 특수교사팀과 베를린의 어느 중도중복장애 특수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학교 복도에 학생들의 그림이 여러 장 걸려 있었는데, 솔직히 제 눈에는 3세 아동이 낙서한 듯한 수준의 그림들이 도화지 채로 벽에 듬성듬성 걸려 있더라고요. 그걸 본 어느 한국 교사께서 “우리 학교 같았음 교사가 학생들 그림 다 도와주고 완성한 다음 똑같은 액자에 넣고 일렬로 간격을 정확히 맞추어 전시했을 텐데”라고 하시더라고요. 바로 이 차이이죠. 독일 특수교육은 ‘보여주기’식이 아니죠. 학생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교육이지요. 교사의 도움으로 시작되고 완성되어 나가는 그림이 아니라 학생의 능력과 잠재력으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그림과 같다고 봐요.
독일 교육에는 ‘베축스페르존(Bezugsperson, 상대방의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란 단어가 많이 사용돼요. 장애아동에게 베축스페르존은 부모 및 양육자, 유치원 담임교사, 학교 담임교사, 담당 치료사 등이 해당하는데, 특이한 점은 이러한 인물들이 아동과 기본적으로 수년간 관계를 유지한다는 거예요. 가령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한번 맡은 반을 입학부터 졸업까지 이끌며 학생들과 수년간 관계를 맺지요. 즉, 아동은 자신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자주 교체되지 않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성장하지요. 독일 특수교육은 이러한 정서적 관계를 바탕으로, 장애학생과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특히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중도중복장애 학생들과도 어떻게 하면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가장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하지요. 왜냐하면 의사소통은 교육의 출발점이니까요.
우선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한국에 독일의 특수교육 현장을 더욱 생생하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월드리포트’는 제게 너무 소중한 기회이지요! 그 외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양국의 특수교육 전문가 및 장애인들과 적극 소통하고 교류하는 기회를 위해 에이전시를 설립하고 싶은 꿈도 있어요. 2008년 독일에 처음 왔을 때처럼, 이러한 목표들을 가지고 ‘단순 무식하게’ 돌진하다 보면 그래도 무언가는 이루겠지요? ^^
2020년은 그야말로 ‘코로나 시대’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이 상이한 가운데, 독일은 강력한 지방분권화로 인해 각 연방주의 대응방식도 판이하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의 자율성도 강해 학교마다 상이한 조치를 이행하고 있다. 정말 혼란 그 자체이다. 이러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독일의 특수교육 현장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3월~4월 : 휴교령 그리고 셧다운(shutdown)
3월 중순이 되자 독일 전역에 최초의 셧다운, 즉 강도 높은 봉쇄조치가 내려졌다. 병원과 약국, 생필품 가게, 주유소 등등 국민경제 및 인프라 발전과 직결되어 특별 보호되는 분야, 일명 ‘시스템 주요 직종(Systemrelevante Berufe)’를 제외하고는 모든 시설과 기관이 문을 닫았다. 교육 기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가운데 모든 학교에서 원격수업을 시작하였지만 사실 독일의 초·중등 교육기관은 원격수업을 위한 디지털 기기 보급 및 사용 교육, 인터넷 연결망 구축 등과 관련하여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던 터라 한국보다 원격수업과 관련한 혼란이 매우 큰 편이었다.
또한 학습도우미의 1:1 지원을 받으며 통합학급에서 교육을 받던 장애학생들은 한순간 학습도우미 지원도 중단되는 바람에 가정에서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 학습할 수밖에 없었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는 시스템 주요 직종에 종사하는 학부모의 자녀를 중심으로만 긴급 돌봄을 제공하였다. 수많은 장애 학생들이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낙인이 찍히고 정부가 ‘시스템에 주요한’ 직종만 강조하는 사이, 정작 장애학생들의 ‘삶에 주요한’ 교육과 학습보조, 치료, 케어 등에 대한 지원이 한순간에 중단되고 이들의 사회적 관계망이 철저히 차단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5월~6월 : 학교 부분 등교 시작
5월부터 봉쇄조치가 조금씩 풀리면서 대부분 연방주의 학교들이 등교수업과 가정수업을 병행하는 형태로 운영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학교 등교 시 가장 우선시된 대상은 고등학교 졸업부였다. 그다음으로 초등학교 고학년과 내년 중등부 졸업시험을 앞둔 학년, 기타 학년 순서대로 등교 재개가 논의되는 가운데, 특수학교 등교 시작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으로 논의되거나 발표되지는 않았다. 이렇듯 특수학교가 정부의 뚜렷한 방침을 기다리는 동안 고등부 졸업반을 중심으로 등교를 재개하였지만, 상당수의 장애학생이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지정되어 가정수업에만 의존해야만 하는 실정이었다. 원격수업을 위한 기술보급 및 교육자료 개발 등의 노력이 꾸준하게 이루어지면서 장애학생을 위한 수업이 서서히 개선되기는 했으나, 장애학생들이 원격수업을 원만히 따라가기란 본인에게도 부모에게도 여전히 큰 어려움이었다.
7월~10월 : 여름방학, 초등학교 입학 그리고 학교 정상 운영
독일에는 보통 7월과 8월 사이에 약 40일 정도의 여름방학이 있고 8월에 초등학교 입학식을 한다. 올해 여름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독일 전역 초등학교 입학식은 예정된 대로 진행되었다. 여름방학 후에는 거의 모든 학교가 정상 등교를 시작하고 각종 교내방역수칙이 강조되었지만, 수업 중 마스크 의무 착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였다.
특수학교는 일반학교와 동일한 방역수칙이 적용되어 정상 등교가 시작되었다. 함부르크의 어느 중도중복장애 특수학교(지적장애, 지체장애) 교사는 이 시기의 특수교육현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학생들과 신체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는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1.5m 간격유지가 가능하단 말이죠? 학교 내에서는 각각의 반 단위가 섞이면 안 된다는 단호한 규정이 있어요. 그런데 미니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은 버스 안에서 다른 반 학생들과 섞이게 돼요. 현재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테라피(작업치료, 물리치료, 언어치료)도 다 중단된 상태예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요리해서도 안 되고, 노래를 불러도 안 되며, 축구도 할 수 없고, 연극활동도 금지되어 있고, 소풍도 갈 수 없어요. 쉬는 시간에는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머물러야 하고요. 그러고는 학생들은 다시 스쿨버스를 타고 좁은 공간에서 다른 반 학생들과 뒤섞인 채 하교하지요. 현재 제가 바라는 점은, 인력과 공간 확보는 둘째로 치더라도, 최소한 특수학교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된 현명한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11월 이후
초겨울에 접어들고 연일 신규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훌쩍 넘어서자 독일은 제2차 셧다운을 시행하고 있다. 교육기관은 아직 정상 운영 중이나 서서히 등교수업과 가정수업을 병행하는 학교들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교내 마스크 착용은 의무이지만, 수업 중 마스크 착용 의무에 관해서는 아직도 연방주 별 의견이 분분하여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말 마스크 논쟁은 아직도 끝이 없다. 특수교육학 교수인 Christoph Ratz는 “특수학교에 돋보기를 갖다 대면 코로나19가 야기한 모든 문제점이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라고 지적한다. 독일 교육이 가진 다양한 문제점을 현재 특수학교가 매우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씁쓸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의 주목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장애학생들은 코로나19라는 짙은 안개에 갇혀 더더욱 사회의 관심과 시선에서 멀어지진 않을까 염려스럽다. 부디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의 장애학생들 모두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장애학생을 지원하는 모든 이가 코로나19 시대에도 불구하고 학생 옆에 굳건히 그리고 건강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 주기를 바란다.
https://www.zeit.de/2020/42/inklusion-corona-schule-kinder-behinderung
https://www.zeit.de/hamburg/2020-08/corona-schuloeffnungen-foerderschulenbehinderung-risikogruppe-hygienemassnahmen
https://www.weser-kurier.de/bremen/bremen-stadt_artikel,-2845-quarantaenefaelle-inschulen-und-kitas-in-bremen-_arid,1943837.html
https://www.zeit.de/gesellschaft/2020-05/bildung-coronavirus-krise-schuloeffnungenmenschenrecht
https://www.dw.com/de/schule-in-corona-zeiten-wie-realistisch-ist-der-regelbetrieb/a-54484041